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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 Kim Heritage Society Member Profiles

We present some members of the Helen Kim Heritage Society:

여기 헬렌킴 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몇 분을 소개합니다.

The Marian Sharrocks Intemann Scholarship & Mrs. Suzanne Nelson

In January of 2002, the International Foundation for Ewha Womans University received a letter from Mrs. Suzanne Nelson and a check for approximately $90,000. The letter stated that abiding by Marian Sharrocks Intemann’s will, Mrs. Suzanne Nelson, as the trustee, would build a scholarship fund in her aunt’s name.

Mrs. Intemann was born in Syen Chun, Korea on July 13, 1902 to Alfred Meanock (Manic) Sharrocks, M.D. and Mary Ames Sharrocks. Dr. and Mrs. Sharrocks were missionaries sent to Syen Chun (100 miles from Pyung Yang, today in North Korea) in 1900 from the First Presbyterian Church of San Francisco. They had three daughters and one son: Ella Janet, Marian Ames, Theodora, and Horace. Dr. Alfred Sharrocks and his son Dr. Horace Sharrocks both heavily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the medical field in Korea. Mrs. Marian Sharrocks Intemann taught at Ewha during 1920-30’s, and passed away in California in 1989-90. Mrs. Intemann’s brother, Dr. Sharrocks, managed her assets, but upon his death, the sum of $87,457.63 was given to the Foundation in 2002, as Mrs. Intemann named the Foundation as designated beneficiary. The Marian Sharrocks Intemann Scholarship Fund was established with specification that the principal and the interest will be put in a permanently restricted fund until it would reach $100,000. Also, awards are intended for Christian students who are devoted to their studies. In 2005, its goal amount was reached, and since then, students have been receiving scholarships in the name of Mrs. Marian Sharrocks Intemann every year.

This year, Ms. In Hye Ha, a student majoring in psychology, received the scholarship for the spring semester, and another student will be receiving the award for the fall semester.

2002년 1월, 이화국제재단은 수잔 넬슨이라는 분으로부터 한 장의 편지와 함께 근 9만불에 이르는 수표를 받았다. 수잔 넬슨은 자신의 고모인 마리안 쉐록스 인테만의 유언을 집행하면서 고모의 이름으로 장학기금을 설립할 것을 의뢰하였다.

마리안 쉐록스 인테만은 1902년 7월, 지금은 북한 땅이 되어버린 신천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알프레드 메녹 쉐록스와 어머니 메리 에임스 쉐록스는 샌프란시스코 제일장로교회의 파송을 받아 1900년 평양으로부터 100여마일 떨어진 신천이라는 곳에 와서 의료선교를 펼치던 선교사 부부였다. 이 부부에게는 세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바로 엘라 자넷, 마리안 에임스, 테오도라, 그리고 호레이스였다. 이들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아버지 알프레드 쉐록스와 아들 호레이스 쉐록스는 의사로서 한국의 의학분야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의료선교사들이다. 수잔 넬슨에 따르면, 고모인 마리안 쉐록스 인테만은 1920-30년대에 이화대학에서 가르친 적이 있다. 1989년 혹은 1990년에 마리안 쉐록스 인테만이 작고한 뒤, 미세스 넬슨의 아버지 호레이스 쉐록스가 자산 관리를 하다가 또한 작고하시어, 2002년 유언에 따라 이화국제재단에 마리안 쉐록스 인테만의 남은 자산 $87,457.63 이 기부된 것이다. 마리안의 뜻에 따라 국제재단은 이 기금을 원금 10만불이 될 때까지 이자소득을 쌓았다. 2005년부터 원금에서 나오는 이자소득으로 매년 마리안 쉐록스 인테만의 이름으로 기독교인 학생에게 장학금이 지급되고 있다.

2011년 봄학기에는 심리학과 하인혜 양이 이 장학금을 받았다. 가을학기에는 또 다른 학생이 장학금을 받을 것이다.


The Shin Hyung Kim Memorial Scholarship & Dr. John Young Song Kim

Dr. John Young Song Kim, how did you come to have interest in Ewha? What and who introduced Ewha Foundation to you?

My wife Shin Hyung graduated from Ewha College of Home Economics in 1949. She continued her education and earned her B.A. at Adelphi College in 1952. In 1954, she earned her Master’s Degree in Social Works at the University of Illinois. I earned my medical degree from the University of Minnesota. I met her in 1952 at a Korean Methodist Church in Chicaco, and married her two years after. Shin Hyung has been an active member of YWCA, and it was she who introduced Dr. Betty Mitchell, the first president of International Foundation for Ewha W. University, to Dr. Helen Kim when she visited Chicago and gave a speech at YWCA in 1967. At that time, Dr. Helen Kim was making efforts to raise funds for Ewha and formed Ewha W. University Decade Development Committee consisting of prominent Americans, Ewha graduates, and spouses of Ewha graduates. Decade Development Committee became the cornerstone of International Foundation. Dr. Helen Kim asked me and Shin Hyung to join her efforts in helping Ewha. When the Foundation was established, I served as a board member in its early years (1973-1976), following her words. Due to the limitations at my job, I could not attend the yearly board meetings so my wife Shin Hyung subsequently served the Foundation from 1977 to 1996 until her last days.

김영송 박사님은 이화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누가 이화국제재단을 소개해주었습니까?

제 아내 김신형은 1949년 가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그 후 1952년 아델피대학에서 학사를, 1954년에는 일리노이주립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저는 미네소타대학교에서 의학으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아내를 만난 것은 1952년 시카고에 있는 한인감리교회에서였습니다. 우리는 2년 뒤 결혼했습니다. 아내는 YWCA 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1967년 김활란 박사님이 시카고에 와서 YWCA 강연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 때 아내가 김활란 박사님과 베티 미첼 여사를 소개하였습니다. 베티 미첼 여사는 후에 이화국제재단이 설립된 후, 첫 이사장으로 봉사하였습니다. 시카고에 오셨을 당시 김활란 박사님은 이화대학을 위하여 기금을 모금 중에 계셨고, 미국인, 이화의 졸업생들, 이화의 사위들로 구성된 이화대학 10년 발전위원회를 만드셨습니다. 이 10년 발전위원회가 후에 이화국제재단으로 발전된 것입니다. 김활란 박사님은 저와 제 아내에게 이화를 돕는 일에 함께 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이화국제재단이 설립되고 나서, 저는 김활란 박사님의 마지막 뜻을 따라 1973년-1976년까지 재단 이사로 섬기며 이화를 도왔습니다. 제가 일 때문에 더 열심히 하지 못하게 되자 제 아내가 1977년부터 199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재단 일을 도왔습니다.

What made you decide to include Ewha Foundation in your will? What is your wish or purpose?

Shin Hyung had always been a very giving person. She wanted to help Ewha and the needy students there. She and I established a scholarship fund in 1984 and have added annual gifts to it. After she passed away, I continued to help students at Ewha. Professor Mi Hae Kim at Department of Social Works in Ewha once was a patient of mine. While I talked with her, I was informed that there have not been sufficient resources at Department of Social Works to encourage its needy students to study and do their researches further. After discussing with my daughter Diann, who is a lawyer, I decided to include Ewha Foundation in my will. This scholarship is for students writing research papers reflecting innovation in the fields of medicine, theology, social works and/or public policy, honoring my late wife, who, as a Christian social worker, devoted herself to preserving and honoring human rights and social justice.

유언서를 작성하시면서 이화국제재단을 기억해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특별한 바램이나 목적이 있으십니까?

김신형은 늘 베푸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모교와 이화의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는 1984년 장학기금을 세워 매년 기금을 늘리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저는 이화를 계속 도왔습니다. 사회복지학과의 김미혜 교수는 제 환자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녀와 이야기 중,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계속하며 연구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도울 자원이 사회복지학과에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변호사인 제 딸 다이안과 의논하여 이화국제재단을 제 유언서에 수혜자 중 하나로 넣기로 하였습니다. 이 장학금은 의학, 신학, 사회복지, 공공정책 분야에 관련된 연구논문을 쓰는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한 연구장학금입니다. 신실한 기독교인이며 사회복지사로서 인권과 사회정의를 위해 헌신하였던 아내 김신형을 기리고자 하는 장학금입니다.

Dr. John Young Song Kim is a retired cardiothoracic surgeon living in California. He has six grandchildren from four children with Mrs. Kim. Since 2002 when the principal of the fund had reached $30,000, Dr. John Young Song Kim has contributed additional $3,000 each year to Shin Hyung Kim Memorial Scholarship Fund to award the research scholarship of $2,000. Upon his death, $100,000 from Shin Hyung Kim Estate will be added to the scholarship fund. Since 2003, students at Department of Social Work have received the award every year. This year, Ms. Eun Jeong Kim received the scholarship for her research thesis.

김영송 박사는 심장흉부외과의로 은퇴하여 캘리포니아에 거주하고 있다. 고(故) 김신형과 사이에 둔 4명의 자녀로부터 6명의 손주들을 얻었다. 2002년 김신형 추모장학기금이 원금 3만불에 이르자, 매년 3천불을 기금에 더하여 이 중 2천불을 사회복지학과 연구장학금으로 수여하고 있다. 유고시에는 그의 유언에 따라 10만불이 기금에 더해져 매년 연구장학금으로 수여될 것이다. 2011년에는 사회복지학과의 김은정 양이 이 장학금을 받았다.


Dr. Soon-Young Yoon and Mr. Richard M. Smith

Dr. Soon-Young Yoon, how did you come to have interest in Ewha? What and who introduced Ewha to you?

I first met Dr. Kim OkGill when she was in the United States promoting the IFEWU. At that meeting, she invited me to teach at Ewha in the Sociology Department, Graduate School. She explained that her vision was to create a community of international friends for Ewha Womans University through the Foundation. I have always remembered that she saw the Foundation as more than a fundraiser. She wanted the Foundation to help Ewha connect to international friends who would help it grow and flourish in many ways.

윤순영 박사님, 이화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누가 이화를 소개해주었습니까?

김옥길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선생님이 이화여자대학교 국제재단을 널리 알리러 미국에 계셨을 때였습니다. 그 모임에서 김옥길 선생님은 내게 이대 대학원에 와서 사회학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당신의 비전은 국제재단을 통해서 이화여자대학교를 위한 국제적인 교제 공동체가 생기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내 기억에 김옥길 선생님은 국제재단을 단순한 모금기관 이상으로 여겼습니다. 국제재단이 이화가 다방면에서 자라고 번영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친구들을 연결하여 이화를 돕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Why do you support Ewha?

As I am not an Ewha graduate, many people ask me that question. My relationship to Ewha is very emotional and strong because of my experience during 4 years of teaching. My colleagues were teachers like Dr. Suh Kwang-Sun and Dr. Lee Hyo Choi. These were remarkable, courageous human rights leaders during a time when free thought and basic liberties were denied to the university. When you live through such experiences with brave friends, you keep them—and the school—in your heart for a long time.

왜 이화를 돕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내가 이화의 졸업생이냐고 묻습니다. 저는 졸업생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화와 맺은 관계는 저를 가슴 깊이 강하게 이화에 연결시켜주고 있습니다. 이화에서 가르친 4년은 제게 이런 깊은 감정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대학 안에서까지 열린 사상을 펼칠 수가 없었고 기본적인 자유마저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럴 때 서광선 박사님, 이효재 박사님 같은 교수님들이 인권을 위해 선도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이 분들을 통해 저는 놀라운 경험을 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인생을 살면서 어느 한 시기에 그렇게 용감한 친구들과 사귀며 강렬한 체험을 하게 된다면, 그후로도 오랫동안 그런 사람들, 그런 학교를 마음에 두게 될 것입니다.

What made you decide to include Ewha Foundation in your will? What is your wish or purpose?

I don’t know how much will be left in my will. But I have allocated a percentage of my charitable giving for Ewha. It may be symbolic—or—it may be substantial. I don't think that matters as much as my final gesture leaving this world. I would like to contribute to making Ewha a strong educational force for the future. Who knows where it will lead the country.

이화를 유언서에 포함시키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특별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제가 떠나고 나서 유산이 얼마나 남게될 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남은 재산 중 일정한 퍼센테이지가 이화로 가도록 해 두었습니다. 그저 남겼다는데 의미를 둘 정도로 소액이 될지, 상당한 금액이 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액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기고 가는 의사표시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이화가 앞으로 미래를 이끌어갈 강력한 교육적 원동력이 되도록 후원하고 있습니다. 이화가 바로 한국을 이끌어가는 선도적인이 힘이 될 수 있으니까요.

Could you let us know about you: about your work, family, life history?

I was born in Pyongyang. Probably one of the nicest ties I had with Dr. Kim OkGill were the wonderful North Korean meals she served to both kings and paupers consisting of a standard menu-kalbe, “chi chim” pancakes, and “Naeng-myun” noodles. Although I was raised in Michigan (my parents taught music at Michigan State University), Korean food remains my first choice for breakfast, lunch or dinner. As for the story of my life beyond what I love to eat—it is summed up in what I do for a living: “I work for the UN and sometimes I get paid.” After teaching, I joined Unicef and WHO. With a PhD in anthropology, it seemed a good fit to work with every culture in the world. Song PokSyn, my aunt, always told me that an education was a privilege and that I had an obligation to “give back” and use it for a useful purpose.

본인과 가족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저는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어쩌면 저를 김옥길 선생님과 단단히 연결시켜준 것도 맛있는 이북 음식이었는지 모릅니다. 김옥길 선생님은 고관대작에게나 어려운 사람에게나 음식차별없이 갈비, 빈대떡(지짐이), 냉면 같은 이북 음식을 대접해주시곤 하였습니다. 비록 미시간에서 자랐지만(부모님은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셨습니다), 한국 음식은 매끼마다 우선 순위가 되는 음식입니다. 먹는 이야기를 떠나서 제 인생을 소개하라고 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해야겠습니다. 저는 UN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봉사도 하지만 급료를 받는 일도 합니다. 교수직을 그만두고 저는 UNICEF(국제연합아동기금)와 WHO(세계보건기구)에서 일하였습니다. 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하였기에 세계의 다양한 문화 속에 함께 일하는 것이 안성마춤이었습니다. 집안 친척이신 송복신 씨는 제게 교육이란 일종의 특권이므로 교육받은 사람은 사회에 “되돌려 주어야” 하며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항상 말씀해주셨습니다.

Your husband, Rick Smith, is also a supporter. Can you tell me more about his involvement with Ewha?

Rick and I met in Korea when he was the Asia Editor for Newsweek, writing a cover story about the Korean economy. It was entitled “The Koreans are Coming.” Little did he know at that time that he would also be coming to Korea quite often in the future. I was teaching at Ewha at the time so he became well acquainted with Dr. Kim OkGill, Dr. Kim HoSoon (whom he adored), and other friends. That personal connection is an important reason he supports the school, but he also is a strong believer in the power of education to transform societies, economies and women’s leadership. I’m lucky that he also shares my educational philosophy. We contributed a small room to the ECC building in our daughter’s name so that Song-Mee would also have a connection to Ewha and its mission.

남편인 리챠드 스미스 씨도 이화의 큰 후원자 되시는데요.

남편 릭과 저는 한국에서 만났습니다. 릭은 뉴스위크지의 아시아판 편집자였습니다. 한국 경제에 관한 커버 스토리를 쓰고 있었지요. “한국인이 오고 있다” 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는 이슈 말입니다. 그 때는 앞으로 한국에 그리 자주 오게 될 지 몰랐을 겁니다. 제가 이화에서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릭은 김옥길 선생님, 김호순 선생님(릭은 김호순 선생님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을 비롯해서 많은 친구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개인적인 교분이 릭으로 하여금 이화를 후원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 말고도 릭은 교육이야말로 사회와 경제와 여성의 리더쉽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더욱 이화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저의 교육 철학을 함께 나누고 있으니 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딸의 이름으로 이화캠퍼스센터(ECC) 건립을 후원하였습니다. 그래서 ECC 의 방 하나에 우리 딸 송미의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우리 딸 역시 이화와 이화의 교육이념에 연결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Dr. Soon-Young Yoon and her husband Richard M. Smith, former Chairman of Newsweek magazine and now CEO of Merryck & Co America, have been strong supporters of Ewha and the Foundation. They have given for scholarships and administration as well as school project like ECC. Dr. Yoon’s contribution and dedication as a board member of the Foundation is beyond priceless. They live in New Jersey. They are Helen Kim Heritage Society members.

윤순영 박사와 남편 리챠드 스미스(전 뉴스위크 회장/현 메릭엔컴파니 회장)는 ECC 와 같은 이화대학의 큰 프로젝트 뿐 아니라 장학금과 운영기금 등 여러 기금에 매년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액수가 작은 장학기금이 자랄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있는 윤순영 이사의 헌신은 액수로 따질 수 없는 후원이 된다. 유언서에 이화재단을 명기한 헬렌킴 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멤버이며 현재 뉴저지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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